서태후의 죽음으로 흔들린 옛 질서, 개혁된 제국의 생존, 일본의 패퇴와 한반도의 재편, 그리고 밀레니엄 사태 이후 다시 쓰이기 시작한 세계의 역사.
동아시아의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결코 거대한 전쟁의 포성과 함께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죽음, 그것도 궁정 안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비보가 한 시대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서태후가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궁중 비사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그것은 분명 한 시대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광서제의 뜻에 따라 중국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개혁의 길로 나아갔고, 수많은 혼란과 충돌 속에서도 끝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혁명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반발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거센 파도 속에서도 제국이라는 틀은 기묘할 만큼 오래 버텨냈습니다.
마침내 중국은 중화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시대를 이어 가게 되었고, 느리고 불완전한 개혁이 오히려 나라를 단숨에 무너뜨리지 않고 버티게 했다는 평이 후대에 남게 됩니다.
일본이 대륙으로 세력을 뻗치고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결국 옛 제국이 완전히 밀려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기록들 속에는 패배와 붕괴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으며, 오래된 제국이 현대 전쟁과 팽창주의의 압력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 한 번 예상을 비껴 갔습니다. 중화제국은 상처 입고 물러서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다시 힘을 모아 갔습니다.
전쟁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일본을 대륙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일본이 한반도를 포함한 대륙의 거점을 잃고 물러났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그 시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대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겉으로는 공화국의 형식을 유지하였고, 임시정부의 계보를 잇는 듯한 명분 또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듯, 그 시기의 한국은 중국의 보호 아래 놓인 나라였습니다. 독립과 예속, 자주와 의존이 한데 뒤섞인 기묘한 시대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스스로 서 있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거대한 제국의 질서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식민도, 완전한 독립도 아닌 중간지대였으며, 한국 사회는 바로 그 모순 속에서 근대 국가의 외형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 질서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벌어진 밀레니엄 사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세계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는 너무도 익숙한 말이 되었지만, 그때 처음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괴물들이 인간을 학살하였으며, 기존의 군대와 제도와 상식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을 재난이라고 불렀고, 또 어떤 이들은 문명의 단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든, 그날을 기점으로 인류가 완전히 다른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혼란 속에서 한국이 뜻밖의 도약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대재난 이후의 질서를 수습하느라 한동안 주춤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힘을 키워 갔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는 헌터를 배출했고, 게이트와 몬스터에 대응하는 체계를 누구보다 빠르게 정비했습니다.
그렇게 쌓아 올린 힘은 곧 경제적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기적이 산업의 기적이었다면, 두 번째 기적은 생존과 전투와 적응의 기적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중국 역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랜 협상 끝에 대한민국은 독립된 국가로서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단절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대신, 자국의 무역망과 경제 질서 속으로 한국을 끌어들였습니다.
세계가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초대형 게이트가 열렸던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이전과 이후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 재앙으로 그리스 인구의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도시 하나, 마을 하나, 가정 하나가 통째로 지워지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세계는 이 사건을 통해, 게이트가 더 이상 국지적 위협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재앙이 늘 그렇듯, 그리스의 비극 뒤에는 수많은 소문이 따라붙었습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말, 오래전부터 움직여 온 비밀 조직이 배후에 있다는 말,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더 깊은 질서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말까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태후의 죽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옛 동아시아의 질서, 개혁된 제국의 생존, 일본의 패퇴와 한반도의 재편, 밀레니엄 사태가 불러온 문명의 균열,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떠오른 한국과 다시 흔들리는 세계의 불안까지.
이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현재가 아니라, 무너지고 버티고 다시 일어선 수많은 사건들이 켜켜이 겹쳐 만들어 낸 결과물인 셈입니다.